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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aus의 리뷰공장]#02_조율 혹은 폭력.

2018-09-22 14:56
조회수 53

** 이 글에는 영화 <whiplash>의 결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스포일러를 원하지 않는 분은 뒤로가기를 눌러주세요! **



  

  고등학교 시절,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학교 오케스트라의 단원이었다. 30명 정도가 모인 적당한 규모의 학교밴드에서 나는 스네어드럼을 맡게 되었다. 그러니까 영화 <drumline>의 주인공과 동일한 상황이었다(물론 실력은 빼고). 평소 스네어드럼을 줄곧 쳐와서 오디션을 치르고 그 자리를 따게되었는가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부모님이 음악학원을 보내면 농땡이치며 축구하러가기 바빴던 '일반적인 학생들'처럼 꾸준한 연습과는 담을 쌓으며 살아왔다. 그러니까 실력으로 들어갔다기 보다는 마칭밴드(marching band)의 화려한 겉모습에 혹해 지원했고, 얼떨결에 스네어드럼을 치게 됐다는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영화 드럼라인(drum line), 2002

  우리학교는 매우 특이하게도 매년 타학교와 럭비경기를 치르는 전통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잠실경기장을 하루동안 통째로 빌려서!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도대체 무슨 돈으로 그게 가능했는지 의문이 들지만 그땐 그런 생각을 할 틈조차 없었다. 잠실운동장 한가운데를 돌며 두 학교의 전교생과 선생님들이 보는 앞에서 밴드공연을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곳에서의 실수는 교장선생님의 얼굴에 직통으로 먹칠을 하는 것이었고, 그후로 어떤 일이 펼쳐지게 될지는 굳이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밴드단장도 그 사실을 아는지 이미 한껏 예민해져 있는 상황이었고, 자그마한 실수에도 귀청이 찢어질듯한 고함과 함께 욕설을 날리기 바빴다. 단원들의 표정은 모두 긴장으로 굳어있었고 스틱을 쥔 양손은 바들바들 떨리며 입속이 바싹 타들어갔다. 입장 직전 경기장 입구의 그늘 속에서 대기하고 있자니 콜로세움에서 싸우는 로마검투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 나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밴드에 지원했던걸까?  (-> 정답 :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밴드에 지원하지 않았다면 나는 잠실운동장에서 공연을 하는 행운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밴드의 일원으로서, 수천명의 관중으로 가득 찬 스타디움에서 연주하던 순간의 장면과 소리는 결코 잊을수 없는 경험이었다. <드럼라인>에 등장하는 밴드는 내가 경험했던 밴드와 매우 유사하다. "one band, one sound". "하나의 밴드, 하나의 소리"라는 모토 아래 모든 단원은 지휘자의 지시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따라야 하고, 그 시간동안 개인행동은 절대 존재해선 안된다. 

  눈치챘겠지만 이것은 곧 군대의 모토와도 일치한다. 개인은 오로지 집단을 위해 존재하며 집단을 위해 개인은 희생해야 한다는 것. 단지 그 희생의 결과로 밴드에서는 완벽히 하나로 일치된 음악이 탄생한다는게 다를 뿐이다. 

영국의 왕실 군악대. 마칭밴드는 군악대에서 유래되었다.


  하지만 그런 하나의 소리가 저절로 나오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단체생활이 그렇듯 사람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하기 마련이고 이를 막기위해선 적절한 '조율'이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조율은 집단마다 그 형태가 다른데 내가 경험했던 조율은 대체로... 점잖지 못한 편이었다. 쉽게 말해 쉴새 없이 욕을 먹거나 또는 그걸로 정신없이 처맞았다는 소리다.

주방 상황을 창의적으로 '조율' 중인 고든램지 횽



  그리고 바로 이 시점에서 <whiplash>가 등장한다. 위플래쉬 역시 드럼을 소재로 한 영화이나, 여기서는 스네어드럼이 아닌 재즈밴드 내의 풀세트드럼이다. 최고의 드러머가 되겠다는 꿈을 안고 음대에 입학한 앤드류는 밤새 드럼을 연습하다 학교의 전설적인 교수, 플레쳐의 눈에 띄어 밴드 드러머로 발탁된다. 그런데 전설적이라는게 꼭 교수의 실력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욕을 초현실적으로 해서 판타지 스릴러

  플레쳐 교수는 고삐 풀린 미친개나 다름없었다. 학생들의 연주가 자신의 기준에 못미칠경우 무차별적인 폭언과 폭행을 서슴지 않았는데, 밴드와 학교 내에서는 그를 막을 방법이 없다는게 문제였다. 그는 언제나 확실한 성과를 내는 교수였기 때문이다. 이에 불만을 제기할 경우 밴드에서 바로 퇴출될것이 뻔하기에 앞으로의 커리어를 위해선 그저 참고 버텨내는게 전부인 상황.  앤드류는 말그대로 매일 밤 피나는 연습을 하며 그저 하루빨리 공연에 오를 날만을 기다린다. 그러나 공연 당일 앤드류는 교통사고를 당하고, 피를 뚝뚝 흘리며 기절 직전의 몸으로 힘겹게 무대에 오른다. 심한 부상으로 인해 연주를 완전히 망치게 된 앤드류. 그런 그에게 플레쳐가 평소처럼 독설을 퍼붓자 앤드류는 마침내 폭발하고야 만다.

☆분.노★폭.발.☆!


  사고 원인조사로 인해 그간 해왔던 잘못들이 밝혀져 교수에서 해임된 플레쳐와 손에서 드럼을 놓게 된 앤드류. 몇 달 뒤 우연히 어느 뮤직바에 들어간 앤드류는 플레쳐를 만나 그간 지나간 일들에 대해 터놓고 대화를 나누게 된다.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말보다 더 해로운 말은 없으며, 학생들이 현재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게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믿는다는 플레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말을 듣게 된 앤드류는 혼란에 빠진다. 이어 플레쳐는 밴드공연에 드러머가 필요한데 같이 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건네고 잠시 고민하던 앤드류는 결국 제안을 수락하게 된다. 그렇게 영화가 흔하고 뻔한 구도의 해피엔딩으로 끝나는가 싶은 찰나...

"짜잔! ~ 함정이었습니다!"

  그렇다. 플레쳐는 자신을 고발한 앤드류에게 빅엿을 먹이기 위해 중요한 공연을 희생하면서까지 함정을 파놓은 것이었다. 정말 여러모로 전설적인 교수가 아닐 수 없다. 뼈빠지게 연습해온 곡인 <whiplash> 대신, 난생 처음듣는 곡이 흘러나오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앤드류. 망연자실하며 무대를 떠나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앤드류는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 플레쳐의 제지를 무시하고  <caravan>을 막무가내로 연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앤드류의 신들린 연주에 밴드는 점차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시작하고, 플레쳐마저도 점점 음악에 몰입하게 된다. 말그대로 "무아지경(無我之境)"의 상태에서 펼쳐지는 연주는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계속해온 연습 덕에? 아니면 플레쳐의 말대로 끊임없이 가했던 압박과 채찍질 덕일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연주가 이미 정상의 범주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평범을 벗어난 연주는 놀랍고 경이로우며 심지어 기괴하기까지 하다.

  플레쳐는 학생들에게 가하는 채찍질과 압박을 로켓이 지구를 벗어나는데 필요한 추진력인 양 설명한다. 그리고 그 말은 틀리지 않았다. 플레쳐의 압박이 없었다면 앤드류는 무아지경 수준의 연주를 결코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정도면 꽤 잘했어."라며 스스로를 타이르고 중간에 멈췄을 것이 분명하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둘은 서로의 도움(?)을 받아 경이로운 연주를 해내는 업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결코 스승과 제자같은 인간적인 관계라 부를 수 없다. 음악이 끝나면 그들의 일시적인 관계 또한 사라질 것이다. 이미 한 번 떠나버린 로켓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올 수 없듯이.

  '조율'이란 것에 과연 적당선이 있을까? 폭언과 폭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원하는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가능은 하겠지만 그것은 매우 귀찮고, 어렵고, 복잡한 길이 될 것이다. 언제나 결과를 내야하는 현실에선 채찍질을 택하는게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선택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진짜 던져야 할 질문은 바로 이것이다. 원하는 결과를 얻기위해 당신은 인간성을 어느 수준까지 희생할 수 있는가? 당신이 '조율'을 해야 할 입장이라면 반드시 먼저 생각해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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